':)'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21.12.10 긴글.1.

긴글.1.

2021. 12. 10. 22:47 from :)

 


깨가 왔다

 

나는 엄마에게 깨를 보내달라고 했고 엄마는 깨를 보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깨 한봉지와 10키로의 귤과 3키로의 단감이 왔다.

 

 

 


몇해 전 전화로 흘리듯 깨가 없다는 나의 말에 엄마를 깨를 보내주었다. 

어렸을때 할아버지가 보내둔 깨를 거실에 대야에 부어두고 엄마와 나와 동생이 골라내고 볶았던 일이 떠올라 
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시도하였다가 아주 망해버렸다. 

엄마가 보내준 깨는 골라내다 하루가 지나버렸으며 볶는 중에 다 냄비 밖으로 튀어나가 양이 절반으로 줄었으며 심지어 제대로 볶이지도 않아 새하앴다. 고소한 맛이나 향은 커녕 음식에 넣으면 하얀 깨가 동동 떠있어서 어색할 지경이었다. 

그 이후로는 엄마에게 깨를 얘기한적이 없다. 

 

 



얼마전 첫째아이가 콩나물반찬을 먹다 말했다. 

"깨가 없어서 싫어."

누가 6살짜리 아이에게 나물에 깨를 뿌려야한다는 걸 알려줬을까. 
매일하는 영상통화에서 그날로 나는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 깨 보내줘, 볶아서" 

못된 딸. 그리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손자를 키우는 딸인 나는 엄마가 분명 고생할거라는걸 알면서도, 그 고생을 해서 보내줄 걸 알고 얘기한다.

엄마는 엄마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의 공격에 그저 지는척을 하고는 15kg 상자 가득 채워 나에게 보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상자를 모르는 척 받아 내 냉장고 한켠을 채운다.  

깨의 먹음직스런 색깔과 너무나 당연하게 고소한 향이 아이스크림 옆에서 얼어가다 양념통에 들어가다 콩나물이나 시금치 어딘가로 들어가 내새끼의 배를 채우겠지.


 

 

 


겨울이 되면 거의 매주 집으로 귤박스가 온다.

한박스일 때도 있고 두박스일 때도 있고 스트로폼박스일때도 있다.

귤상자안에는 대게는 멀쩡한 귤과 터진 귤 그리고 약간의 브로콜리, 고구마, 감, 옥수수 등이 있어있고

 

스티로폼 상자안에는 갓 담근 철저히 내 취향의 김치와 서투르게 손질해 얼린, 그냥 비닐백에 돌돌 쌓인 누군가 주거나 혹은 아빠가 잡았을 것이 분명한 (절대 사지않았을) 고등어나 낙지 같은것이 들어있다. 

 

 

 

엄마는 엊그제 한게 분명한 김치를 보냈으면서도 받았다는 나의 전화에 이렇게 묻는다.

김치 안 쉬언? 

엄마는 나를 잘 안다. 
조금이라도 익은 김치를 안먹는 나를. 




그렇게 엄마는 나의 곁에 있고, 나는 엄마 옆에 있지만 있지 않다. 
15kg 귤 상자의 500 g 은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대답이고 나머지 14.5kg은 엄마의 바램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0) 2020.02.17
4.  (0) 2020.02.13
3.  (0) 2020.02.07
2.  (0) 2020.02.04
1.  (0) 2020.02.04
Posted by Ryang, :